청소사태 이후로 우리 초밥집 사장에게서 조금씩 인정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받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go home'이라는 말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로 인한 고용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 차원에서도 뭔가 수를 써야 했다. 청소일에서 '다른 사람은 못 하는 나 만이 할 수 있는 건 뭘까' 고민을 했다. 그래서 세가지를 고안했는데, 주방에서 초밥을 만들고, 저녁에는 매장 정리와 청소를 도와주는데, 매장 판매 현황과 그날 저녁의 재고를 볼 수 있어서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거다. 나는 마케팅을 배웠지 않는가?' 귀찮던 마케팅 과제들과 팀 프로젝트에서 배운걸 실전에서 써먹어 보자는 생각이 스쳐지나 갔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점수를 따야 한다.' 솔직히 알바 입장에서 많이 팔리면, 같은 시간에, 같은 임금을 받으며 많은 초밥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 자체는 훨씬  번거로워진다. 아마도 다른 알바생들이나 매니저에게 말했다면  반대했을 일일지도 모른다. 주문량이 많다고 보너스를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생겨나서 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소심한 나의 아이디어는 이러했다.

첫번째. 우리 가게는 당일 아침에 만든 초밥만을 그날에 모두 판매한다. 그래서, 남는 재고는 무조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그게 너무 아까웠다. 마감에 가까워지는 늦은 저녁시간 때에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그냥 매장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초밥이지만, 아침에 먹는 거랑 저녁에 먹는 거는 신선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횟감과 밥이라는게 시간이  지날수록 신선도는 떨어지고 식감이 변하지만, 가격은 변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저녁에 사는 사람은 아무런 메리트가 없었다. 그래서, 재고 감소와 저녁 손님을 위해서, 어차피 버리는 거 싸게라도 팔아버리면 매출이 증가하지 않는가? 그래서 마감 한 시간 전에 30%가격 할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두번째. 일반의 서양인들은 초밥 먹는 법을 모른다. 나도 회랑 초밥이라면 한국에서 죽자고 먹었지만, 제대로 먹는 법을 몰랐다.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는지, 여러 초밥이 있으면 어떤 순서로 먹어야 하는지 당시에 유튜브 영상을 보고서야 알게되었다. 그런데, 한국인인데, 아시아인인데, 심시어 초밥도 자주 먹었는데 나도 몰랐는데 '동양식'이라는 다소 생소한 문화를 접한 서양인들은 오죽하겠는가? 자기들이 초밥을 먹지만, 대충 TV에서 본  것처럼 따라 하는 수준에서 초밥을 먹는다는 것을 매장에 방문한 손님들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되었다. 심지어는 초밥을 한 번도 안 먹어본 친구들도 있으니 제대로 초밥 먹는 법 혹은 도시락을 제대로 즐기는  법?이라는 간단한 설명 정도는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이러한 설명을 매장에 해놓을 필요가 있었고, 손님도 알 필요가 있었다. ' Kokoro에서 초밥 제대로 먹는 법을 배웠다면 고객은 평생 동안 여기서 배운 대로 초밥을 먹을 것이다. 그렇다면 평생 동안  초밥을 기억하게 될 것이고, '생애 고객' 혹은 '충성고객'이 된다는 생각을 해보았고, '초밥 제대로 먹는 법 가르치기'를 제안했다.  

세번째. '한 손님이 여러 초밥을 사게 만들어야 한다.' 1유로짜리 한 조각 초밥에서부터 12유로짜리 초밥 도시락까지 메뉴별 가격 종류가 다양하다. 그런데, 한 손님이 여러 개를 사도록 유도하는 게 맞는데, 아무런 그런 가격정책이 없었다. 그냥 각 메뉴별로 사버리게 내버려둔 셈이었다. 심지어, 여러 개를 산 손님에게 간장이나 잡다구리 한 그런 것에도 돈을 받았다.  여러 개를 사도록 유인해도 모자랄 판에, 전혀 많이 사고 싶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패키지 가격이나 세트 할인'을 혹은 서비스를  제공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우리 사장은 조금 무관심했다. 직접  이야기할 실력은 안되어서 사장에게 아이디어가 있으니 메일 주소로 보내준다고 영어로 작문해서 보내 주었다. 시간만 많았다면, PPT로 만들어서, 왜 그래야 하느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작성해서 보내줬을 텐데, 쓰리잡을 뛰는 백수에게는 그런 체력이 없었기에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 하지만, 사장은 내 제안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두 곳의 매장에 일부 아이디어를 적용했다. 아, 물론 나에게 고맙다는 말은 안 했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적용했다는 말도 안 했다. 그냥 다음날부터 매장에서는 저녁에 할인을 하기 시작했고, 세트 할인도 하게 되었고, 조금 더 지나서는'초밥 먹는 법'을 적은 작은 카드가 생겨났을 뿐이었다. 

 내게는 아무런 댓가가 없었다. 그래도 만족했다. 조금은 이제 사장에게서 더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고, 조금은 더 고용이 안정된 느낌이 들었다. 군대에서도 인정받고 싶어서 안달 났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런 모습이 아직 남아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칭찬을 먹고사는 동물인가 생각도 하게 되었다. 당시에 아직 다  말하지 않은 아이디어가 많았다. 그러나 앞으로 어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다시 실수로 인해서 퇴사를 당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에 아이디어를 아끼기로 했었다.

마케팅이라는 거 별거 아니다 생각한다. 안 잘리기 위한 미생들의 결과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 하지만, '생존'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나름 진지했었다. 마케팅 이론에서 말하는, 진정으로 고객을  생각하기보다 어쩌면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결과물 중에 일부만이 시장에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본 의외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주방에서의 일이 자리를 잡아 가고, 청소일이 쉬워 질 때 즘에, 신문팔이 일을 언제 그만 둘까? 하는 찰나에 자괴감이 들었다. 지칠때로 지친 몸이 아프기도 했었다. 몸살이라는 게 났고, 아팠지만 아프다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일상처럼 손과 옷에는 연어 냄새와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베인 채로 얼굴에는 외로움에 고단함에 그늘이 가득 한채로 집으로 가는 날, 하필이면  그날은 비가 왔다. 

아프고, 외로웠고, 힘들었다. 거기다 비까지 추적이 내렸다. 아일랜드는 비가 수시로 내리는 그런  나라였지만, 그날의 비는 조금 분위기가 달랐다. 뭔가가 나를 '툭'하고만 건드리면 눈에서 뭔가가  쏟아질 것 같은 때에, 교회 지붕 처마에서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구걸하는 노숙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모습이, 그의 외로움이 나랑 왠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 의식인 듯 무의식인 듯 스스로도 알지 못 한 찰나에 나는 조용히 그 노숙자 옆에 앉아 있었다. 그게 나와 노숙자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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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형님

- 취업대신 3년간 세계일주 - 무전으로 5개 대륙 종횡무진 여행기 - 노숙자부터 대통령까지 인터뷰 여행기 - 할리데이비슨부터 히치하이킹까지 - 세상에 도전하는 청년의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https://www.facebook.com/park.jaebyoung.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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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와 쉐프 그 사이에서 실수연발

오전에는 초밥을 만들고, 오후에는 신문을 팔게 되면서 영어와 비자를 위한 어학원은 자동으로 안가버렸다. 그러다 출석 경고를 받았지만, 유럽에서 백수가 살아남는데는 어학원은 무의미했기에 '졸업'이라는 그러한 것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가져질 않았다. 그렇게 400만원이나 냈던, 학원을 포기하며 한 동안 제법 열심히 일했지만, 결과적으로 일을 못 했던 탓일까? 아니면 판매용 초밥을 만들다 몇개를 주워 먹는 걸 들켜서 일까? 그 후로 나는 매일 같이 사장에게 혼이 났다. '이렇게 일할 거면 당장이라도 집으로 가'라고 말이다. 울컥하는 그 느낌, 당장이라도 연어 비린내가 나는 앞치마를 벗어던지며, 'Fuxx off'를 외치며 주방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과 신문팔이만으로는 불안하기만한 미래로 인해 그 울컥함이 매번 밀려와도 참아야했다. 그게 백수로서 나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울분 속에서도 다행이 '집에 가라' 말 하면서도 실제로 자르지는 않았다. 다른 주방 동료들은 늘 하는 말이라며 신경쓰지 말아라 나를 애써 다독였지만, 나는 왜인지 예외일 것 같았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비정규직의 서러움이 이런 것 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분명 백수가 되기로 마음 먹고, 해외로 나온 것인데 비정규직의 불안감을 느끼는 그런 아이러니였다.




제법 성공한 사업가로 알려진, 아이리쉬 아저씨가 운영하는 스시벤또샵의 주방 시스템은 이러했다. 주방은 별도로 도심 외각에 있고, 실제 매장은 도심 중앙에 위치해있다. 말 그대로 'taka away' 전문점.  주방에서 만든 초밥 도시락과 음식들을 3개의 샵으로 배달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점심 장사 이전에 모든 음식을 만들어야 했고, 주문이 많은 날은 마감 시간과 관계없이 바빴다. 나는 바쁜 타이밍에 그런 때에, 초보자도 하기 힘든 서툰 실수를 자주 했고, 사장은 그런 나를 항상 혼냈다. 욕먹는 건  관계없지만 자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항상 들었다. 보통의 다른 주방 쉐프들은 주방일만 하고 하루의 일이 끝났지만, 나는 매장 청소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장의 말에 감히 'No'를 할 수 없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내게 박힌 미운털을 뽑아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새벽부터 오후까지 초밥만들고, 저녁에는 매장청소를 하는 스케줄이 나왔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신문을 팔았다. 

거품없이 매일 사장에게 혼나서 인지, 고등학교 때의 혹은 군대의 습관이 남아 있었던 탓인지, 아니면 어떠한 의무감에 의해서 나는 매일 가장 먼저 주방에 도착했다. 물론 소위 말하는 '짬' 때문에 미리 움직이는 것도 있지만, 그냥 자존심에 누군가 나보다 먼저 온다는 그것 자체로 마음이 불편했다. 도착해서도 열쇠를 든 사람이 오기까지 10분 정도 기다렸지만, 그 10분이 나에게 행복감과 백수이지만 아직 괜찮다는 안도감도 주었다. '그래 너 열심히 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라고 말이다. 

 아 그런데, 저녁 매장 청소를 하는 일에 30분이나 늦게 도착해버린 적이 있었다. 더블린은 이상하게 일요일이 장사가 안 되는 날이라  빨리 닫는데, 나는 자꾸 한국 마인드?를 가지고 일요일이 늦게 문 닫는 날인 줄 알고, 자연스럽게 늦게 가버렸다. 아니, 사실은 그 와중에도 데이트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무심하게 쌓인 부재중 전화를 보고 달려갔지만, 너무 늦게 도착해서, 이미 다른 직원이 사장에게 청소하는 사람이 오지 않는다고 문자까지 넣어 버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하는  것뿐이었다. 다른 여직원이 오히려 더 열심히 하는 모습에  미안해하면서, 자기가 변명해주겠다고, 사장에게 말해 준다고 하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판단한 나는 그럴 필요 없고, 내가 늦었는데, 왜 본인이  미안해하느냐고 괜찮다고 했었다. 사실이니까 변명같은건 하고 싶지 않았다. 이래도 저래도 결국엔 내가 늦은 거였다. '여자 때문에!' 그때도 아직 정신은 못 차린 나였다.

 불 같은 성격의 사장에게 내일 새벽부터 혼날게 뻔한 상황,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 깨끗이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 이전에 매장 청소는 남미에서 온 친구가 했었는데, '개판'이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국인으로 고용한 것이었는데, 나는 되려 사장에게 실망감만 준 꼴이었다. 그래서, 비장의 카드, '미싱질'을 시작했다. 군대에서 사단장급 이상이 부대를 방문할 때만 했었던 퐁퐁 미싱 혹은 왁스 미싱. 원래는 하루에 매장 바닥 한 칸씩 점진적으로 할 계획이었지만, 개판에 이판 사판이었다. 나도 도박을 걸어야 했다. 이쁘게 데이트 복장으로 차려입고는 땀을 장마비 내리듯 뻘뻘흘리며 청소를 했다. 심지어는 고개를 한번도 들지 않고 바닥을 큰 칫솔로 비볐다. 하얗게 다시 변하는 바닥처럼 내 마음도 편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평소 보다 20분 정도 늦게 매장을 마감하고, 나는 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 보스, jay야. 늦어서 미안해. 변명하지 않겠어. 시간을 잘 못 이해했어. 이건 온전히 내 잘못이야. 누구를 비판하지 않아. 너에게 그리고 너의 매장에 미안하게 생각해. 그래서 대신에 오늘 늦은 만큼, 나는 오늘 일한 돈을 받지 않을게. 이건 내 자존심이야. 나는 군인이었어. 약속은 내 인생 전부인데, 내가 너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그렇기 때문에 일했지만, 돈을 받지 않았으면 해. 그리고, 내일 아침에 청소 상태를 체크할 때 꼼꼼히 봐줬어면 해. 그리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언제라도 다시 연락해. 당장 달려와서 다시 해놓을게. 좋은 밤 보내 보스"

역시나 기대했던 바대로 쿨한 사장은 읽고 답장을 안 했다. '시크한  놈'이라 혼잣말을 찌질하게 되내었다. 다음 날 바짝 긴장을 한 채로 출근해서 사장이 언제오나 눈치를 보며 일하는데, 덜컥 예상치 못한 시간에 일찍 사장이 나타났고, 무표정보다 더 무표정으로 나를 찾았다. 
'아 이런 신발... 나 이제  잘리는구나 진짜 백수구나' 싶었다.
  
"Jay, 어제 청소 네가 했지?"
 "응, 어제는 나였지..."
"정말 잘했어. 굿잡이야. 매일 매일 깨끗해. 이전에 브라질 애들이었는데, Wow~ 바닥 청소한 애가 너였구나"

하면서 다시 쿨하게 다른 곳으로 가벼렸다. '아... 살았다.' 전화위복이라 그랬던가, 그 이후로 나는 나날이 욕을 덜 먹었다. 인정을 받지는 않았지만  하루하루 나에게 주어지는 임무가 많아졌다. 그래서 추측하건데 아마도 나를 이제는 신뢰하지 않나 싶었다. 청소 하나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사장은 그날 일한 '빼도 좋다고 한 청소 시급'금액도 월급에서 빼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한국을 떠나온 백수이지만, 실제로는 백수가 아닌 상태로 살게 되었다.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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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팔이로서의 삶은 힘들고 고단했고, 하지만 돌아갈 곳은 없었다.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한국이라는 곳에서, 집이라는 곳에서 따뜻하게 맞이해줄 지라도, 나는 도무지 그곳으로 갈 수 가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미래를 포기하고, 가족을 버리고 온 호로자식'에게 그러한 따스함은 사치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래서 신문팔이로 생존만 하며 버티기보다는 '생존' 이상의 것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고, 초밥 쉐프에 지원하게 되었다. 




구인공고에 나와있는 지원 자격은 이러했다. 군필에, 주방일 경험자, 성실하고 힘든 일마다하지 않는 사람 등 뭐 이런 내용들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카톡으로 영어로  문의하라 했고, 나는 공식적인 경력이 적힌 이력서 대신에  거의 A4용지 한 장 분량의 대용량 카톡을 보냈다. '나는 장교 전역자이고, 주방 일은 해본 경험이 전혀 없다. 하지만, 힘든 일이라는 것 잘 할 수 있다.  일에는  일머리라는 게 존재하고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으니, 주방 경험 없어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불러서 일 시켜 보고, 맘에 안 들면 돈 안 주고 돌려 보내도 된다. 답장  기다린다.'의 내용을 그대로 보냈다. 라면도 제대로 못 끓이는데 당시에는 무슨 용기가 그렇게 있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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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세지를 보내고 한 시간이나 흘렀을까? 이상하게도 답장이 왔다. '내일 7시까지 어디 주방으로 와라.' 사실 답장도 기대 안 하고, 다른 곳을 알아보던 중 이었다. '뭘 해야 하지? 더 준비해갈 건 없나?' 생각하며 생전 처음으로 초밥 메뉴를 외우며 공부했다. 어디 레스토랑 주방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다음 날이 밝았고, 기업 면접보다 긴장이 되어서는 1시간이나 일찍도착을 했고, 그렇게 주변을 서성거리다 주방에는 30분 일찍 도착했더니, 새벽 6시 반이었지만 이미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고, '간단한 통성명과 눈 인사' 이후에  나도 바로 일에 투입되었다. 밥을 작은 롤 머신에 넣고, 김을 붙이는 작업을 하고, 그 속에 내용물을 넣는 작업을 했다. 아주 쉬워 보였고, 당연하게 엄청나게 혼이났다. '너무 느리다'한다. 그리고 내가 쓴 물건을 쓰고 바로 원래 자리로 돌려 놓아야 하는 게 쉽게 몸에 베이지 않았고, 일을 빨리 하면서 청소까지 바로 바로 해야 하는 '주방에서 규칙'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Why?'라는 말이 입술 안에서 맴돌며, 입술이 푸르르 떨렸지만, 참아야 했다. 그냥 'Yes'맨이 되어서 'Okay'만 끊임없이 외치며, 여기서 저기서 시키는 일들을 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실수 연발. 만들던 초밥도 떨어트리고, 비싼 횟감들도 흘리고 한 마디로 난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밥은 먹고 일하라 했지만, 첫날인데 말만 떵떵거리며 일 시켜보면 알 것이라 했지, 실상은 일도 제대로 못하는데 밥까지 먹기가 좀 그랬다. 최대한 이마에 맺힌 땀들을 닦아내지 않으려 했는데, 닦아내지 않으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땀을 흐리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보여주는게 아니라, 나는 꼭 초밥쉐프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야 몇달만에 집에 전화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절심함과 설거지를 빨리 하는 건 아니었지만, 꼼꼼히 하는 모습이 좋게 보였을까? 아무튼 다음날 한 번의 trial 기회를 더 받았고 다음 날에도 실수와 땀의 연속이었지만, 결국에는 나는 채용되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전혀 계획에도 없던 아일랜드라는 나라에서 나는 더 계획에도 없었던 초밥 쉐프가 되었다. 사실 라면류 말고는 해본 요리가, 군대에서 냉동을 해동해서 먹는 즉석요리 말고는 없었다. 더욱이 나는 왠만하면 남자는 부엌을 멀리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안티 부엌주의자 였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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